시나리오 진입 조건 3회차 이후, 1번째 혹은 6번째 이야기꾼으로 신도를 선택. [3. 추천하시는 동아리가 있나요? → 3. 파르페 동호회]로 진행.
여, 사카가미라고 했지.
내 이름은 신도 마코토, 3학년 D반이다.
히노한테 부탁 받아서 오긴 했지만 더러운 방이군.
히노가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데는 평생 안 왔을 거야.
그럼 내가 제일 처음으로 이야기해볼까.
뭐든지 첫 번째라는 건 기분이 좋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모처럼 이렇게 알게 됐으니, 네가 왜 신문부에 들어왔는지 알려주지 않겠어?
1. 어쩌다가 들어왔습니다.
2. 전부터 동경했습니다.
3. 추천하시는 동아리가 있나요?
4. 게임 실황자가 되고 싶어서.
뭐야? 나한테 동아리를 소개해달라고?
신문부가 마음에 안 드냐?
뭐, 자세한 건 안 물을게.
그런데, 내가 추천하는 동아리는 어중간한 곳이 아니라고.
혹시 들어간다면 끝까지 기합으로 이겨내라.
그렇게 약속할 수 있다면 내가 책임 지고 소개해줄게.
내가 추천하는 동아리는……
1. 가라테부.
2. 복싱부.
3. 파르페 동호회.
4. 축구부.
파르페 동호회다.
……그 표정은 뭐냐, 사카가미. 그렇게까지 안 놀라도 되잖아. 뭐, 의외냐?
……사카가미. 한 마디만 해둘게. 파르페는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란 건 누가 정했지?
남자가 먹어도 딱히 상관없잖아.
난 그런 편견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자, 여자 같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동호회를 추천한 게 의외라고?
흥, 나랑은 만난 적도 없고 아직 별 얘기도 안 했는데 그런 소리가 나오냐.
너, 안경 끼고 있는 놈들은 죄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냐?
나 같은 놈은 파르페도 안 먹는 조폭 같고?
그런 선입견으로 기사나 제대로 쓸 수 있겠어?
……뭐, 됐다. 히노한테는 잘 얘기해 줄게.
후배 교육은 똑바로 해두라고.
뭐야? 선배가 감독을 소홀히 하니까, 후배가 무례를 저지르는 거지.
윗놈들의 책임이라고. 너도 선배가 됐을 땐 후배를 제대로 가르쳐 둬.
그것보다도, 파르페 동호회 얘기였지.
모처럼 온 거고, 어쩔 수 없으니까 얘기해 줄게.
내가 중학교 때부터 알던 후배 중에, 쿠리하라 코우다이(栗原 幸大)라는 녀석이 있어.
그 녀석은 야구를 좋아하는, 보기 좋게 뜨거운 스포츠맨이거든.
중학생 때부터 야구부였던 쿠리하라는, 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고민 없이 야구부에 들어갔어.
너도 한 번 정도는 본 적이 있지? 우리 학교 야구부가 방과후에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있는 거.
그 녀석들이 올해 어디까지 해 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한심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으면 좋겠어.
응? 파르페 동호회 이야기는 어디 갔냐고?
그렇게 재촉하지 마.
그 쿠리하라라는 녀석은 밥 먹는 것보다도 야구를 좋아했지만, 그거랑 비슷할 정도로 단 거도 좋아했거든.
케이크나 크레페, 양갱에 찐빵. 동서양 상관없이 단 거라면 이것저것 좋아했지만, 특히 파르페야.
엄청난 파르페 마니아라니까.
중학생 때부터 현(県)에 있는 파르페집을 찾아다니면서 어느 가게의 어떤 파르페가 맛있었는지 레포트 같은 걸 쓴 거야.
그 가게의 과일 파르페는 맛뿐만이 아니라 예술성에서도 점수가 높다든가, 이 가게의 초코 파르페는 드물게도 화이트 초코를 쓴다든가…….
그 레포트를 정리하면 제법 괜찮은 책이 나오겠지.
파르페의 뭐가 그 녀석을 그렇게까지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야구도 그렇고 좋아하는 거엔 끝까지 빠져드는 타입인 걸 거야.
그런 녀석이니까 야구를 하면서도 파르페 동호회라는 걸 만들어버렸어.
이 나루카미 학원에는 정식이건 비정식이건 동아리가 꽤 있으니까.
정식 동아리라면 신청 서류라든가, 인원을 확보한다든가, 귀찮은 수속이 있지만 비정식 동호회라면 얘기가 달라.
말하자면, 누구 하나가 만들겠다고 결심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동호회가 되거든.
그래서, 쿠리하라가 있는 파르페 동호회의 활동은 이래.
파르페를 먹으러 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우스울 정도로 알기 쉽지?
부원도 쿠리하라 한 명이니까, 걔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날이나 야구부가 쉬는 날, 먹으러 훌쩍 가기만 하면 그게 부활동이 돼.
숨길 것도 아니고, 나도 한가할 때는 같이 간 적이 있거든. 파르페는 딱히 안 싫어하니까.
"신도 씨, 어때요? 오늘 하나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오, 그래. 한 번 갈까."
이렇게 말이야.
혼자서는 그런 가게에 들어가기 좀 그렇지만, 두 명이라면 괜찮으니까.
그런 점에서, 쿠리하라는 그런 것도 아예 신경 안 쓰고, 혼자서 열심히 세련된 카페 같은 데를 가는 것 같으니까.
꽤 배짱이 있는 놈이야.
너도 파르페 동호회도 겸사 들어가 보면 어때?
흥미가 있다면 추천한다고.
뭐, 그런 쿠리하라니까 당연히 "퍼펙트 할배"의 소문에 관심을 가졌어.
그야 그렇겠지. 파르페를 좋아하는 나루카미 학생인데 "퍼펙트 할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다니, 말도 안 되잖아.
뭐야? 너 "퍼펙트 할배"를 모르는 거냐?
하긴, 이 학교에는 도시전설이나 소문이 산더미만큼 있으니까, 몰라도 어쩔 수 없는 건가.
퍼펙트 할배는, 궁극의 파르페를 만들기 위해서 오롯이 혼자서 몇십 년이고 연구를 계속한 할배야.
나루카미 학원의 근처에 가게를 차려서, 어떻게 맛있는 파르페를 만들까, 어떻게 아름다운 파르페를 만들까, 피나는 노력의 나날을 보낸다고 해.
소프트 크림이나 콘플레이크의 황금비는?
따뜻한 파르페란 사도(邪道)인가? 그런 걸 생각하며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이라고.
사카가미, 그거 알아? 쿠리하라한테 들은 건데, 파르페(parfait)란 건 프랑스어로 "완벽"을 의미한다더라.
퍼펙트(パーフェクト)한 파르페(パフェ)를 만들려는 할배니까, 퍼펙트 할배라고 불린단 거야.
이 이름을 처음 생각한 놈의 네이밍 센스는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 아마 멍청한 놈이겠지.
겉보기엔 평범한 할배라서 말이지.
혹시 네가 어딘가의 가게로 들어가서 거기에 할배가 있다고 해도, 딱 봤을 때 그 사람이 퍼펙트 할배인지 알 수 없어.
하지만 그 가게에서 내온 파르페를 먹으면, 단숨에 그곳이 퍼펙트 할배의 가게란 걸 알 수 있지.
어째서냐고? 그게, 그 파르페가…… 죽을 정도로 맛이 없거든.
그래, 엄청나게 맛없어. 정말 엉망으로 맛없다는 것 같아.
이 세계의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저 세상의 것이 맛있는 게 아닐지 생각해버릴 정도로, 맛없어.
아무래도 입에 넣는 순간 혀가 마비되어서 먹을 수가 없다든가, 지옥의 가마솥이 보인다든가…….
그래서, 기절할 정도로 맛없는 파르페를 어떻게든 안 뱉고 버티고 있으면, 퍼펙트 할배가 이렇게 물어본대.
"어떠십니까? 제가 정성껏 만든 파르페는, 맛있나요?"라고.
"맛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외치고 싶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파르페로 질식할 지경이란 거야.
꽤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먹은 사람한텐 큰일이니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거야. 그렇게 하면 할배는 아쉬운 표정으로 풀이 죽은 채 주방으로 돌아가.
남겨진 녀석은 필사적이야.
필사적으로 입에 들은 파르페를 삼켜 넘겨.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서.
설령 삼킬 수 있다 해도 지옥은 계속 돼.
이번엔 뱃속에 파르페가 달라붙는 거야. 당분간 평범한 식사도 못하게 될 정도로 속이 상해버리는 것 같아.
그래서, 어떻게든 한 입 삼켰다간 그대로 더 이상 손도 대지 않고 돌아가는 거야.
시간이랑 돈만 낭비한 셈이지. 간단하게 임사 체험을 할 수 있으니까, 무가치한 건 아니겠지만.
그런데 매일매일 파르페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치고는, 만드는 게 맛없는 파르페라니 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 걸까?
노력이 완전히 틀린 방향으로 가는 거야.
제법 무서운 이야기지? 아하하하…….
뭐, 소문에는 과장이 붙는 법이니까.
그럴듯하게 소문이 돌고는 있지만, 직접 퍼펙트 할배를 만난 녀석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었어.
그런 쓸데없는 소문은 대체 누가 흘린 걸까?
농담이라고 해도 별로 재미도 없잖아.
이야기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려는 녀석도 지금까지 없었어.
그런데 쿠리하라 녀석은 달랐어. 아까도 말한 대로, 쿠리하라는 좋아하는 거엔 끝까지 빠져드는 녀석이니까.
퍼펙트 할배의 소문을 들은 이상, 궁금해서 어쩔 바를 모르게 되어버린 거야.
정말로 그런 할배가 있을까?
파르페는 진짜로 맛없는 걸까?
맛없다면, 내 혀로 확인해보고 싶다.
맛있는 파르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맛없는 파르페라는 게 그렇게 쉽게 보이는 건 아니잖아.
뭐, 난 굳이 맛없는 파르페 따위 먹고 싶지 않지만, 보기 드문 거에 이끌리는 쿠리하라의 마음을 모르겠는 건 아냐.
나루카미에 입학하고 퍼펙트 할배의 이야기를 들은 쿠리하라는, 시간이 나면 그 가게를 찾아보기로 했어.
성실한 녀석이니까, 야구부 연습은 당연히 빼먹지 않았고.
동아리가 쉬는 동안, 그 짧은 시간 내내 나루카미 학원 근처의 카페나 파르페집을 샅샅이 찾아봤어.
의지가 되는 게 소문뿐이니까, 정말 철저하게 조사했지.
소문에 좀 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어떤 구조를 하고 있다든지, 어떤 이름이라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정보는 일절 없어.
보통은 금방 단념했을 거야.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일이잖아?
하지만 말이지, 쿠리하라는 포기하지 않았어.
평소의 동아리 활동 때문에 체력이 좋으니까, 물론 근성도 꽤 있어.
뭣보다 파르페를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걸 원하는 대로 쫓고 있을 뿐이니까, 고생도 아닌 거야.
쿠리하라에게는 평소와 똑같이 파르페를 먹고, 어떤 느낌으로 맛있었는지 레포트를 쓴다. 그것뿐이었어.
쿠리하라가 퍼펙트 할배를 찾은 지 이미 몇 달이나 지났을 때.
레포트에 써져 있는 건 전부 훌륭한 파르페들.
소문은 결국 소문이었던 걸까? 쿠리하라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쯤, 그 가게가 결국 나타난 거야.
그곳은 분명, 이미 몇 번이고 지나다녔던 길이었어. 학교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이었지.
차가 한 대도 못 다닐 듯한 좁은 곳이었거든.
그런 곳에 가게가 있었다면 못 봤을 리가 없는데.
쿠리하라는 이상하게 생각했어.
그 가게는 엄청 낡아 있어서, 가게라기보다도 골목에 대충 있는 판잣집 같은 거였어.
벽이 너무 허물어져서 밖에서 안이 보일 정도인 거야.
이런 건물이 원래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쿠리하라가 그 가게로 가까이 가자, 거기엔 "파르페 있습니다"라고 쓰인 작은 천이 걸려 있었어.
쿠리하라는, 놀랐지. 그 녀석은 항상 인터넷이나 아는 애들한테서 들은 정보로 가게를 찾고 있어.
하지만 이런 곳에 파르페를 팔고 있는 가게가 있다니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거든.
혹시 여기가 꿈에서까지 나오던 퍼펙트 할배의 가게일지도 몰라.
쿠리하라의 심장은 저절로 쿵쾅거렸어.
들뜨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쿠리하라는 가게 문을 열었지.
문도 낡아서는, 조금만 당겨도 삐걱거리는 거야.
가게 안도 한밤중처럼 어두워.
멋 부리는 가게들 중에 일부러 불을 어둡게 하는 곳들, 있잖아.
그런데 쿠리하라가 들어간 가게는 그런 게 아니라, 더 불건전한 느낌의 어둠이었어.
혹시 가게를 닫았나?
쿠리하라가 가게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어.
포기하고 발을 돌리려고 했을 때,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나요?"
"우왓, 깜짝아……"
나이 든 할배가 가게 안쪽에 서 있던 거야.
쿠리하라는 어깨를 움츠렸지만, 그것도 순간이었어.
그 할배가 웃는 얼굴이 워낙 살가웠거든.
가게가 낡은 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성격이 좋아 보이는 할배였어.
보고 있으면 안심되는 듯한, 시골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떠올릴 법한, 그런 인상이었어.
쿠리하라는 안심하고 물었지.
"아, 네. 한 명이에요."
"그럼,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편하신 곳이라고 해봤자, 작은 테이블 두 개랑 그 주변에 의자 몇 개가 있을 뿐이었지만.
쿠리하라는 적당히 입구랑 가까운 쪽에 앉았어.
자기가 찾고 있던 퍼펙트 할배가, 눈앞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두근거림을 숨기면서 말이야.
하지만 진짜인지 아닌지는 파르페를 먹어보지 않으면 몰라.
쿠리하라는 긴장하면서, 자리에 놓인 얄팍한 메뉴판을 펼쳤어.
"뭐야 이게……?"
메뉴에 쓰인 글자를 보고, 쿠리하라는 놀란 거야.
보통 메뉴판에는 파르페의 이름이나, 사진을 넣어놓잖아?
거긴 가격밖에 쓰여 있지 않았어.
게다가 800엔이랑 1만 엔 두 개만 쓰여 있었지.
"저, 저기요. 이건 파르페 가격인 거죠? 대체 무슨 파르페인가요?"
"네. 맛있는 파르페와, 정말 맛있는 파르페입니다."
"음, 800엔인 쪽이?"
"맛있는 파르페입니다."
"그럼 1만 엔인 건?"
"정말 맛있는 파르페입니다."
쿠리하라는 기가 막혔어.
쿠리하라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야.
좀 더 구체적인 걸 듣고 싶었는데, 할배는 그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히죽거리고 있어.
"저기, 이건 엄청 큰 파르페라서 이렇게 비싼 건가요?"
"1인분의, 정말 맛있는 파르페입니다."
일반적인 가격인 800엔 쪽을 시킬까?
아니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인 1만 엔 쪽을 시킬까? 쿠리하라는 고민했어.
그 시점에서 이미, 쿠리하라 녀석은 꽤 냉정함을 잃은 거야.
그런 건 어딜 봐도 당연히 800엔 쪽이잖아.
혹시 이 할배가 진짜 퍼펙트 할배라면, 1만 엔을 내고 엄청 맛없는 파르페를 먹는 게 돼.
혹시 상관없는 그냥 할배였다고 해도, 파르페에 1만 엔이나 내겠냐고.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잖아.
난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고 생각해.
그래, 넌 쿠리하라가 어떤 파르페를 골랐을 것 같아?
1. 1만 엔.
2. 800엔.
그래, 걘 1만 엔짜리를 고른 거야.
불면 날아갈 것 같이 낡은 가게에, 여생이 별로 남지도 않은 것 같은 할배가 점원을 하고 있어.
여기서 삐끗하면 다음은 없을지도 몰라.
지갑을 확인하고 실컷 고민한 거야.
그동안에도, 할배는 웃으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어.
800엔짜리 파르페는 어디서든 먹을 수 있지만, 1만 엔은 어떻겠어?
그렇게 눈에 띌만한 게 아니야. 쿠리하라한테는,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파르페보다도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진 거야.
"……1만 엔 쪽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할배는 조용히 말하고, 주방 쪽으로 사라졌어.
스스로가 정한 거라곤 하지만, 쿠리하라는 벌써 안절부절못했어.
혹시 자기가 엄청나게 멍청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
잠깐 있다가, 할배가 파르페를 쟁반에 올려서 가져왔어.
쿠리하라는 진심으로 실망했어.
그건 아무리 봐도, 평범한 과일 파르페였거든.
주변에 오렌지나 키위를 곁들이고, 딸기가 살짝 올라가 있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해빠진 파르페였지.
맛있든 맛없든 간에, 1만 엔이나 하면 생긴 것도 고급스러운 게 좋잖아?
화려한 사탕 세공이 있다든가, 고급 과일을 썼다든가.
그런데 그 파르페는 그런 분위기조차 없었어.
시켜버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쿠리하라는 스푼을 손에 들었어.
크림을 한 번 떠서, 입에 넣었지.
"……?!?……!!!"
쿠리하라는 눈을 번쩍 떴어.
그 크림이 말도 안 되게 맛있었거든.
입 안에서 퍼지는 깔끔한 단맛, 혀에 닿으면 느껴지는 쾌감.
너무 과하지 않은 맛이,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쿠리하라는 정신이 팔린 채, 이번엔 주변의 과일을 집었어.
딸기는 통통한 게 윤기가 났고,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적당한 맛이 났어.
농부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쏟은 애정이 딸기 안에 가득 차 있는 듯했지.
다른 과일들도 전부,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풍부한 맛이었어.
분명 5성 레스토랑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건 나오지 않겠지.
별 것 아닌 과일 파르페가, 지금의 쿠리하라한테는 대단한 보석처럼 느껴졌어.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쿠리하라는 파르페에 푹 빠졌어.
숨 쉴 틈조차 아껴서 눈앞의 기적을 탐했지.
"어떠십니까? 제가 정성껏 만든 파르페는, 맛있나요?"
"……!!"
한 번 더 충격받았어.
저 말은, 확실히 퍼펙트 할배의 소문 그대로잖아.
할배의 질문에, 쿠리하라는 고개를 끄덕였어.
먹느라 바빠서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지.
드디어 퍼펙트 할배를 만났다는 기쁨까지, 쿠리하라는 그만한 기쁨을 처음으로 느꼈어.
뭐, 천국으로 가버릴 것 같은 정도였더라고.
할배는 기쁜 듯이 웃으며 그런 쿠리하라를 보고 있었다고 해.
거의 파르페를 다 먹어갈 때쯤,
갑자기 딱딱한 게 어금니에 닿았어.
콘플레이크가 뭉쳐진 건 줄 알았는데 도무지 씹을 수가 없었지.
미심쩍게 생각해서 뱉어봤더니, 뭔가 조약돌 같은 게 나왔어.
평소의 쿠리하라라면 거기서 할배한테 뭐라도 한 마디 했겠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명백한 이물질이잖아.
게다가 1만 엔이나 하는 파르페니까.
하지만 쿠리하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않았다기보다도, 아무 말도 못 했지.
"파르페를 먹는다"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파르페에 빠진 거야.
쿠리하라는 눈 깜짝할 새에 파르페를 먹어치웠어.
시간으로 따지면 3분도 안 걸렸겠지.
하지만 쿠리하라한테는 몇 시간 정도 행복한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진짜로, 먹은 뒤에 잠시 멍하니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더라.
"손님, 괜찮으세요?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아, 아뇨.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라서……"
"감사합니다. 거 참, 황송하네요."
쿠리하라는 멍하게 행복에 젖은 채 계산을 마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어.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돌아가서 뭘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났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침대 위에서 아침까지 자고 있었다더라.
"들어보세요, 신도 씨! 제가 드디어 퍼펙트 할배랑 만났어요!"
그날 점심시간, 쿠리하라가 엄청난 기세로 나한테 오더라고.
퍼펙트 할배의 가게를 드디어 찾은 것, 그리고 거기 파르페가 엄청나게 맛있었다고 빠르게 떠들었지.
"그런데, 그건 소문이랑 다르잖아. 퍼펙트 할배의 파르페는 죽을 정도로 맛없다며?"
"분명 노력의 성과가 나온 거겠죠. 계속 연구해서, 결국 궁극의 레시피를 만들어낸 거 아닐까요?
저 감동해버렸다니까요. 저도 야구 연습을 더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하긴."
"에헤헤…… 그래서 말인데, 신도 씨도 다음에 같이 가지 않을래요?
진짜로 맛있다니까요. 그건 무조건 살아있는 동안 먹어두는 편이 좋아요."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나 같으면 파르페에 1만 엔은 안 내. 게다가 이상한 거도 들어 있었잖아."
"800엔짜리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분명 맛있을 거예요, 같이 가요!
게다가, 항상 그런 게 들어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쵸?"
쿠리하라가 그렇게 열심히 권유하는 건 그때까지 없었지.
평소라면 타이밍이 맞으면 가자든가, 가볍게 말하는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때는 꽤 끈질기게 굴었어.
난 문득, 그 녀석이 날 속이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쿠리하라가 퍼펙트 할배의 가게를 찾았단 건 진짜겠지.
거짓말을 하는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엄청나게 맛있다는 건 거짓말인 게 아닐까?
분명 비싼 돈을 주고,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맛없는 파르페를 먹은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아쉬운 대로, 내가 똑같은 꼴이 되도록 하려는 속셈인 거야.
800엔짜리든 1만 엔짜리든, 아무튼 죽을 정도로 맛없는 파르페를 나한테 먹여서, 자기랑 똑같은 고통을 맛봤으면 한다.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건, 그걸 위해서다.
그때의 난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러면, 내가 어쨌을 것 같아?
1. 그 가게에 갔다.
2. 가지 않았다.
"……좋아. 가자."
후배 부탁이잖아. 일부러 당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나중에 이야깃거리는 되겠지 싶어서, 가기로 했어.
"아싸, 정말 후회는 안 할 거예요! 그럼, 다음에 동아리 없을 때 방과후, 꼭 가요!"
쿠리하라는 어마어마하게 기뻐했어.
자기 반으로 돌아갈 때의 그 녀석의 발걸음을 보기만 해도 들떠 있었단 걸 알았지.
쿠리하라랑 약속한 날이었어.
방과후, 쿠리하라를 따라서 퍼펙트 할배의 가게로 갔지.
가게는 쿠리하라가 말한 대로 낡아 있었지. 척 보면 운영하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더러웠거든.
폐가랑 헷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어.
"쿠리하라, 진짜로 여기 있는 거지?"
"여기예요, 여기. 잊어버릴 리가 없죠. 자, 어서 들어가요."
쿠리하라는 겁 없이 문을 열었어.
문의 경첩이 녹슨 건지, 기분 나쁘게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지.
가게 안은 꽤 어두웠어. 파르페 같은 게 나올 분위기가 아니야.
하물며 이런 데서 맛있는 음식이 나올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했지.
"이런, 어서오세요……"
그때, 어두운 데서 불쑥 할배가 나타났어.
쿠리하라한테서 얘기를 미리 듣지 않았다면 놀라서 소리를 질렀을지도 몰라.
그 정도로 갑자기 할배가 나타난 거야.
"오오, 저번에 오셨던 분 아닙니까. 오늘은 두 분인가요?"
"네, 두 명이요! 잘 부탁드립니다!"
쿠리하라는 들떠서는 진정을 못했거든.
야구 시합 전에, 상대 팀한테 인사하듯이 힘차게 큰 소리를 냈어.
사람을 속이는 게 그렇게 신나나? 난 반쯤 질려 있었지.
할배 쪽도, 쿠리하라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히죽거렸어.
너무 웃고 있는 탓에, 얼굴에 주름이란 주름은 전부 잡혀서 애가 한 낙서 같은 얼굴이었거든.
좋게 말하자면 살가운 거겠지만, 난 조금 기분이 나빴어.
할배는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어디가 입인지 모르겠는 얼굴로 말했어.
나만 의심스러워하고, 쿠리하라는 할배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어.
그렇다기보다, 머릿속에 파르페밖에 없어서 날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거겠지.
바로 자리에 앉더니, 메뉴도 펼쳐보지 않고 바로 1만 엔짜리를 시켰어.
"신도 씨는 뭘로 하실래요? 모처럼 온 건데, 1만 엔짜리는 어때요?"
"너 진심이냐? 난 800엔짜리면 됐어."
날 끌어들이겠답시고 또 1만 엔짜리 파르페를 시킨다니, 녀석도 꽤 하잖아. 패기도 참 좋아.
그 배짱으로 도박이라도 하면 좋은 곳까지 갈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렇게 쉽게 걸려들지 않으니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800엔짜리를 주문했어.
할배는 변함없는 웃음으로 끄덕거리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갔어.
솔직히 거기까지 가서 조금도 두근거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둘이서 잠깐 잡담을 하고 있었더니, 할배가 파르페 하나를 가져왔어.
보기엔 평범한 초코 파르페야. 놀랄 정도로 평범해.
너무 평범해서 딱히 아무 감상도 안 나왔어.
그 가격이니까 당연하지만.
"아마 그게 신도 씨 거네요. 제 거는 과일 파르페라서.
아, 녹기 전에 어서 먹어야죠! 그것도 분명 맛있을 거니까."
난 재촉받은 대로 스푼을 들었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감싼 생크림을 스푼으로 떴지.
분명 먹은 걸 후회할 정도로 맛없을 거야.
각오를 다지면서, 난 스푼을 입에 넣었어.
"어때요!? 엄청 맛있죠!"
" ……아니……평범한데……"
맥이 빠졌어. 진짜로 평범한 맛이었거든.
보기에도 평범하고, 맛도 평범. 아니, 평범한 걸 넘어서 뭔가 허무할 정도라고.
먹은 것 같지가 않다고 해야 되나? 먹자마자 그 감촉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하나.
초콜릿이든, 생크림이든, 아이스크림이든, 목을 넘긴 순간 위에 닿기도 전에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1만 엔 쪽에 너무 공들인 나머지 이건 적당히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
시간에 맞춰서 내려고 대충 말이야.
그 정도로 무미건조했거든.
맛없는 걸 기대했다고 하면 이상한 이야기겠지만, 완전 허탕 친 기분이었어.
"네? 이상하네, 그럴 리가……"
쿠리하라는 크게 당황하면서 무조건 맛있을 줄 알았다든가, 역시 1만 엔이 아니면 완벽한 파르페가 아닌 걸까라며, 중얼거렸어.
그제야 난 쿠리하라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란 걸 알았어.
순수하게 맛있는 파르페를 소개하고 싶었을 뿐인 거야.
다시 생각해보면, 걘 사람을 속일 정도로 요령이 좋은 남자도 아니었어.
이래저래 하고 있는 사이에, 쿠리하라가 시킨 파르페가 나왔어.
이야기대로, 보기엔 전혀 특이하지 않은 과일 파르페야.
맨 위에는 딸기, 크림 주변에는 여러 과일이 곁들여져 있고, 그 위에는 새빨간 베리 소스가 뿌려져 있어.
이제 쿠리하라를 의심하진 않았지만, 정말 이런 거에 1만 엔의 가치가 있는 건가? 의아했어.
"우와, 감사합니다!"
그 파르페가 눈앞에 나오니까, 쿠리하라는 이미 다른 건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린 모양이었어.
눈을 반짝거리면서 입맛까지 다셨지.
아까부터 말했던 것처럼, 이야기론 들었지만 도저히 난 그 파르페가 맛있을 것 같지가 않았거든.
사카가미, 넌 어떻게 생각해?
그 1만 엔짜리 파르페가 맛있었을 것 같냐?
1. 맛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2. 맛있을 게 틀림없다.
역시 맛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나도 그래.
"잘 먹겠습니다!"
쿠리하라는 스푼에 크림을 잔뜩 담아 단숨에 입에 넣었어.
그랬더니 어땠는 줄 알아?
아까까진 그렇게 웃고 있던 쿠리하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어.
다 먹는 데에 몇 분도 안 걸린다더니, 한 입 먹고 나서는 손을 움직이질 않았지.
애초에 입을 움직일 기색조차 없었어.
결국 이마에서 진땀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덜덜 떠는 거야.
"야, 쿠리하라. 너 왜 그래?"
너무 이상한 반응을 하길래 얼굴을 좀 봤더니,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어. 아무래도 연기가 아닌 것 같았지.
맛있어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지.
맛없냐고 물어봤더니, 과장될 정도로 세게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어.
난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어.
아니, 미안하다고는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지만, 쿠리하라의 표정을 보니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
그야 그 녀석, 울 정도로 맛없는 거에 1만 엔이나 냈잖아.
"어떠십니까? 제가 정성껏 만든 파르페는, 맛있나요?"
"할배. 난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았지만, 얘는 죽을 정도로 맛없는 모양인데."
난 할배한테 솔직히 말해줬어.
숨겨도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야.
불쌍한 쿠리하라는 첫 한 입조차 삼키지 못한 채, 계속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어.
얼굴도 거의 잿빛이 되어서는.
그 정도인가 싶어서, 그냥 놔뒀으면 됐을 텐데.
난 손가락으로 크림을 살짝 찍어서 먹어봤어.
……그건 지옥이었지. 딱 한 번 찍어먹은 건데 그 정도였어.
쿠리하라는 틀림없이 생사를 헤매고 있었겠지.
"이게 뭐야? 어떻게 해야 이런 걸 만드는 거야!? 이게 1만 엔이라니, 너무 뻔뻔하지 않아?"
"그, 그럴 리가……"
"그런 소리해도 말이야. 진짜로 맛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당신, 이거 자기가 먹어본 적은 있어?"
"죄, 죄송합니다. 오늘 비용은 안 내셔도 되니까……"
말하면서 할배는 고개를 깊게 숙였어.
뭐, 할배한테 심하게 대하는 것도 좀 그렇고, 어쨌든 공짜로 해준다고 했으니까.
난 내 파르페를 놔두고, 그제야 입 안에 든 걸 삼킨 쿠리하라를 데리고 어서 가게에서 나왔어.
문으로 나가는 그 순간까지, 할배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였지.
쿠리하라는 창백한 얼굴로,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휘청거렸어.
죽을 뻔한 걸 필사적으로 살아 돌아온 셈이니까, 누구든지 그렇게 됐을 거야.
"으으, 왜…… 왜 그렇게 맛없었던 거지……"
"글쎄. 어쩌다 보니 저번 게 기적이었을 뿐이고, 역시 퍼펙트 할배의 파르페는 엄청 맛없는 거 아냐?
돈은 안 내고 끝났으니까, 없었던 일로 치자."
난 쿠리하라를 위로했지만, 꽤 충격이었던 건지 걷던 도중에 결국 길 구석에 토해버렸어.
나도 그런 게 위에 들어가 있는 것보단, 마음껏 내보내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쿠리하라의 등 너머로 봐버린 거야.
"야, 쿠리하라, 너……"
쿠리하라의 입에서 긴 머리카락이 나오는 걸 말이지.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야. 긴 머리카락이 뭉쳐져 있는 게 섞여서 나온 거야.
어쩌다가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가버렸다는 이야기는 자주 있잖아.
그런데 그런 수준이 아니야. 일부러가 아니면 그렇게는 안 돼.
"쿠리하라, 괜찮아?"
"죄송해요, 그래도 토했더니 꽤 괜찮아졌어요…… 우왓! 뭐야 이거, 머리카락?"
쿠리하라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확실히 안색은 많이 좋아져 있었어.
자판기에서 산 물로 입을 헹구더니, 점점 휘청거리지도 않았지.
"혹시 저도 모르는 새에 매일 머리카락을 먹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요. 입에 들어가버린 거라든가.
그게 지금 모여서 나왔다든가……"
쿠리하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무서움을 달래기 위한 얘기였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쿠리하라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길었고, 분명히 그 할배가 파르페에 넣은 거겠지.
"쿠리하라, 그 가게는 이제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래도, 저번엔 정말로 맛있었어요. 퍼펙트 할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 아닐까요?"
"컨디션이 나쁘다고 머리카락이 그렇게 들어갈 리가 없잖아.
그 할배는 뭔가 이상하단 얘기야. 알겠냐? 다시는 가지 말라고."
쿠리하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사카가미, 내가 말한 걸 쿠리하라가 지켰을 것 같아?
1. 이제 가게에는 가지 않았다.
2. 또 그 가게로 갔다.
그래. 그 녀석, 모처럼 내가 충고해줬더니 그걸 무시한 거야.
아무래도, 처음에 먹었던 그 기적의 맛을 못 잊었다고 해.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딱 한 번만 파르페를 먹으려고 했다더라고.
또 맛없다면 이젠 완전히 포기하고, 다시는 퍼펙트 할배의 가게로는 가지 않아.
맛있다면 감지덕지한 거고.
설령 맛있다고 해도 머리카락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파르페라니, 난 사양하겠지만.
게다가 또 터무니없이 맛없을지도 모르잖아.
도박이라고는 해도 너무 불리한 거 아냐?
뭐가 손에 남는 것도 아닌데, 먹어봤자 결국 아무것도 안 남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쿠리하라 녀석, 그 파르페에 홀려버린 거겠지.
야구부가 쉬는 날의 방과후, 쿠리하라는 다시 퍼펙트 할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어.
부디 맛있는 쪽이 나오길 필사적으로 바라면서, 가게의 문을 열었지.
기분 탓인지, 가게는 평소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어.
게다가 좀 기다려도 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
밖에는 분명 영업 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데.
"저기, 실례합니다……"
말을 해봐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
자리를 비운 건가 싶어서 쿠리하라가 다른 날에 오자고 생각했을 때, 목소리가 들렸어.
뭘 말하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누군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어.
이 목소리는 할배가 틀림없었지. 쿠리하라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어.
목소리는 아무래도 주방 같은 방에서 들려왔지.
쿠리하라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부르려고 했지만, 여기서 호기심 하나가 생겨난 거야.
지금 주방에 간다면 그 1만 엔짜리 파르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대체 어떤 재료를 쓰면 그렇게 맛있어질까.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야 그렇게 맛없어질까.
쿠리하라는 먹은 파르페의 레포트를 쓰는 남자야.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어.
쿠리하라는 살금살금 다가갔어.
주방 안을 봐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운영 비밀이니까 안 된다고 거절당하는 게 싫었던 거야.
"……의……은……에서……꺼내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쿠리하라는 천으로 칸막이가 쳐져 있는 주방을 들여다봤어.
그랬더니, 거기엔 상상하고 있던 주방 같은 건 없었어.
지하로 이어지는, 큰 계단이 있었지.
할배의 혼잣말은 그 밑에서 들리는 거야.
딱히 소리가 큰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그 목소리는 띄엄띄엄 들렸어.
쿠리하라는 숨을 죽이고 계단을 내려갔어.
어두우니까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더욱 신중히 계단을 밟았지.
내려갈 때마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는 걸 느꼈어.
"의……만드는 방법은……코에서……"
할배의 혼잣말은 점점 커져.
동시에 지금까지 맡은 적 없는, 곰팡내 같은 게 쿠리하라의 코를 찔렀어.
죽음의 냄새라고 할까? 썩은 내와는 다른, 좀 더 세월이 쌓인 묵직한 냄새야.
적어도 음식점에서 맡을 법한, 입에 넣어도 되는 것의 냄새는 아니었어.
계단을 내려간 끝에는 큰 방이 있었지.
안을 들여다봤더니 사람 한 명이 들어갈 것 같은 큰 상자 비슷한 게, 몇 개나 겹겹이 쌓여 있었어.
공기는 이상하게 건조했고, 정체 모를 상황에 초조해진 쿠리하라는 목이 바싹 말라왔어.
할배는 쿠리하라한테서는 등을 돌린 채 방 안쪽에 있었어.
할배의 앞에는 커다란 조리대가 있었지.
그 위에 올려져 있는 게 쿠리하라한테는 인간으로 보였나 봐.
그 인간 같은 것에, 할배가 긴 막대기를 집어넣다가 뽑아내서 막대기에 붙은 걸 먹는 듯했어.
설마,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어.
분명 뭔가 잘못 본 거겠지.
쿠리하라는 조금만 더 가까이 가자고 생각한 건지, 그때 상자 하나에 발을 부딪치고 말았어.
당황한 쿠리하라는 순간 숨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
할배는 천천히 쿠리하라 쪽을 돌아봤어.
"죄, 죄송해요! 어떻게 파르페를 만드는 건가 싶어서. 좀 궁금해갖고, 그래서."
쿠리하라는 필사적으로 사과했어.
크게 혼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뒤돌아본 할배의 얼굴은, 조금도 화내고 있지 않았어.
오히려 웃는 거야. 크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었지.
입안의 이는 엉망으로 빠져있었고, 그 탓에 더욱 섬뜩했어.
방금 먹던 게 꽤 맛있었던 건지 왠지 즐거워 보여서, 화내지 않는단 거에 쿠리하라는 조금 안심했지만, 영감의 정체는 화내고 말고의 문제를 뛰어넘었어.
"저, 저기, 나쁜 뜻은 아니었어요…… 준비 중이라면, 오늘은 가볼,"
"우선은 코에서 뇌수를 꺼냅니다."
쿠리하라의 말을 가로막고, 할배는 웃는 얼굴로 계속 이야기했어.
"우선 코에 갈고리를 넣어 뇌수를 빼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꺼내죠.
그리고 배를 열어 내장을 제거합니다. 심장은 중요하니까 남기고요."
"네? 저기, 무슨 소리예요?"
"잠시 건조하는 걸 잊지 마세요. 썩지 않도록 방부제를 바릅니다.
정성이 담긴 작업이 최고의 작품을 만듭니다.
공정을 틀려서는 안 됩니다. 두렵고 맛없는 것이 되어 손님에게 최악의 작품을 먹이게 되죠.
요전에는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할배가 들고 있는 막대기 끝에는 탁한 분홍색의 뭔가가 붙어 있어서, 할배가 다가올 때마다 그게 바닥에 떨어진 거야, 철퍽거리면서.
"우선 코에 갈고리를 넣어 뇌수를 빼냅니다."
그래, 그건 뇌수야. 쿠리하라는 순간 이해했어.
할배는 인간의 머리에서 뇌수를 꺼내 먹는 중이었어.
난 그걸 훔쳐봐버렸구나.
정신을 차린 쿠리하라는 완전히 주저앉은 채여서, 도망치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완벽한 파르페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최고의 식재료, 신선도, 도구, 그건 당연한 거지요.
그것만으로는 궁극의 디저트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더욱 최상의 것을 만들고 싶은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저의 기쁨이죠. 수십 년, 수백 년의 고민 끝에 저는 드디어 그 대답에 도달했습니다.
그건 시간입니다. 쌓인 시간이 맛에 깊이를 더하는 거지요.
유구한 시간이, 맛을 극상으로 올려주는 겁니다."
할배의 헛소리는 멈추지 않아.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지, 공포에 질린 쿠리하라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어.
뭐가 됐든 그런 장면을 봐버렸으니, 자기도 저 갈고리에 뇌수가 뽑힐 게 틀림없어.
쿠리하라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움직이려고, 가까이 있던 상자 하나를 짚으려 했어.
그 상자는 보기와 달리 꽤 가벼웠던 거지.
쿠리하라가 손을 올린 순간 단순히 뒤집혔어.
"이런, 무슨 짓을…!"
(미라 CG 부패된 사람 묘사 주의)
안에 뭐가 들어있었을 것 같아?
인간의 미라야.
바싹 마른 고목 같은 피부, 살갗 사이로 드러난 뼈, 작게 남은 손톱…….
죽은 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도 지났을 미라가 상자 안에 들어 있었어.
사카가미, 넌 미라를 본 적 있어?
이집트에서는 기원전부터 미라를 만드는 방법이 확립되어 있었다더라고.
살아있는 게 아니란 건 확실한데도, 미라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묘하게 생생하단 거야.
어쩌면 잠시 시선을 뗀 틈에, 우리처럼 걸어 다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
뭐, 보존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죽음 직전에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모습이 됐을지.
보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야.
상자에서 튀어나온 건 인간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미라였어.
아까 할배가 열심히 중얼거리던 건 미라를 만드는 방법이었던 거야.
"귀중한 재료가……! 아까워라!"
할배는 눈물을 흘리며 그 미라를 안아 일으켰어.
주름투성이의 손이 말라버린 미라의 살갗에 닿아 있는 모습은 정말 꺼림칙했지.
손상은 없는지 조심스러운 손길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피고 있는 할배를 보고, 쿠리하라는 번쩍 정신이 돌아왔어.
도망치려면 지금밖에 없어.
떨리는 무릎을 어떻게든 움직여서, 쿠리하라는 왔었던 계단을 비틀거리며 뛰어올랐어.
가게를 나가는 그 순간까지, 할배가 오열하는 소리가 지하에서 들려왔지만,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지.
정신없이 달리던 쿠리하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샌가 이미 자신의 집에 와 있었어.
살아난 거야.
숨을 내쉬는 동시에, 그 지하에서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어.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겠다고, 쿠리하라는 단단히 결심했어.
쿠리하라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질렸거든.
그러니까 난 가지 말라고 한 거야. 선배의 충고를 무시한 죄겠지.
뭐, 나도 쿠리하라를 너무 뭐라 하진 않겠지만.
나도 궁금해져서, 그 뒤에 싫어하는 쿠리하라를 억지로 끌고 가서 가게 앞을 지나가게 해봤거든.
그 녀석, 계속 저주당할 거라고 외치더라고.
그런데, 이미 어디에도 없었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 길에는 가게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
그 할배는 도대체 뭐였던 건지.
어쨌든, 미라를 파르페에 섞기나 하니까, 꽤 위험한 놈인 건 틀림없어.
아마 인간이 아니겠지.
쿠리하라가 파르페를 먹었을 때 들어가 있던 조약돌 같은 거나 머리카락, 그건 미라에 붙어 있던 이나 머리카락이었겠지.
그런 걸 쓰니까 1만 엔이 넘는 거 아니겠어?
어디에서 가져온 건지, 자기가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라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 쿠리하라?
좀 지긋지긋해하나 싶었는데, 아직 파르페 가게 순회는 계속하고 있어.
과일 파르페는 트라우마가 된 모양인지, 요즘엔 무조건 다른 걸 주문하는 것 같더라고.
사카가미, 너도 파르페에 관심이 있다면 동호회에 들어가 보면 어때?
파르페를 먹으러 다니기만 하는 느긋한 곳이고, 쿠리하라 녀석, 파르페에 관해서는 꽤 정보통이니까.
다만, 이상한 할배가 하고 있는, 묘하게 맛있는 파르페 집을 보게 된다면……. 어서 가게에서 나오는 거야.
이걸로, 내 이야기는 끝이야.
ED024. 퍼펙트 할배(パーフェクトじい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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