鳴神学園 新聞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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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 11. 12. 00:19

이 글은 백 점 학원 이야기-설산 편에 진입한 후, 신도가 설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3. 죽음에 이르는 고산병]이라고 선택했을 때의 분기를 서술. 이전의 전개는 여기를 참고.


(…)
 

다음날 아침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와버렸어.
바늘로 꾹 찌르는 듯한 냉기를 느끼며 눈을 떴더니, 입구의 외벽이 조금 넘어가 있고 텐트 앞엔 고토나 다른 학생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있었어.
동결이야. 텐트의 잠금쇠가 아침의 냉기로 얼어버린 거지.
녹이려 하거나, 깎아보거나, 여러 수단은 써봤지만 얼어붙은 잠금쇠를 빼내는 건 아무래도 힘들었어. 결국 텐트는 그 자리 그대로 놔두는 걸로 되어버렸지.
 
침낭은 다 무사하고, 이만큼 눈도 쌓여있으니 눈을 파서 굴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지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고 요시다가 제안했거든.
고토는 거기에 동의한 것 같긴 했는데, 싫은 예감이 든다면서 그 날은 말수가 극도로 적었어.
원래부터 종이 접시나 질겅거리는 이상한 놈이니까, 우리도 뭔가 더 캐묻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게 좋지 않았던 걸지도 몰라.
 
야, 사카가미. 넌 설산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라고 생각해?
 
1.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2. 모든 걸 덮치는 눈사태
3. 죽음에 이르는 고산병
 
그래, 뱃멀미랑 비슷한 증상이 일어나거나 속이 안 좋아진다는 그거야.
높은 산이란 건 공기가 희박하지? 폐활량을 단련하기엔 좋을진 몰라도, 정신 똑바로 안 차렸다간 산소 결핍이 올 거야.
운동을 하면 지방을 에너지로 태우는 거지만, 산소 결핍 상태가 되면 지방을 태울 수가 없어져.
그러면 몸은 지방의 대신이 될 것을 찾아 거기서 에너지를 뽑아내지. 그게 뭐일 거 같아? 근육이야, 근육.
 
하지만 근육을 소모했다간 체력도 떨어지고, 뭣보다 해로운 호르몬까지 만들어져서 내장에 부담이 돼.
산을 오르면 다리가 퉁퉁 붓거나, 소변이 지나치게 노랗거나 하는 건 그게 원인이야.
 
그래서 그 유해한 호르몬 탓에 일어나는 게 고산병이야.
심해지면 뇌에 종양이 생겨버리기도 해서 정신에도 영향이 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어서 자신이 미친 것도 모른 채 묘한 행동을 하다가 죽는 거야.
우리 중에서도 그 고산병에 걸려버린 놈이 나왔어.
 

2일째… 다음 설영 지점을 향해 걷고 있을 때야.
갑자기 내 앞에서 걷고 있던 오오쿠라가 뒤로 돌아 말을 걸었어.
 
"…야, 신도… 여기 왠지 덥지 않아?"
 
처음에 난 오오쿠라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아까도 말한 대로, 설산이니까 발을 멈추기만 해도 얼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추워.
그런데 오오쿠라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땀을 뻘뻘 흘리는 거야.
 
그 앞에서 걷고 있는 칸다 같은 애들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창백한데… 오오쿠라는 덥다고 중얼거리며 옷을 벗으려고까지 하는 거야.
나는 곧장 선두에서 걷고 있는 고토에게 무전기로 얘기했어. 그랬더니 물을 마시게 하라고 지시하는 거야.
 
"똑바로 정신 차리게 해 주세요. 그건 모순 탈의(矛盾脫衣)라고 하는 증상이랍니다.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해, 몸을 뜨겁게 하려는 신체 활동이 지나치게 활성된 결과지요. 더운 게 아니라 너무 추운 겁니다. 체감 온도에 속으면 안 되지요. 여기는 영하점의 눈 지대랍니다. 옷을 벗었다간 악화될 터이니 참아야 한답니다."
"그치만, 선생… 뜨거워. 온몸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 "
"안 탈 거야, 안 타. 괜찮아.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면 돼. 힘내!" (1번)
"정신 차리세요, 6번. 아, 더 따뜻하게 해 줄까요?" (2번)
"하지 마! … 미안해, 손대지 말아 줘…."
 
달래려고는 했지만, 오오쿠라는 반쯤 우는 상태로 괴로워하며 자꾸 옷을 벗으려고 했어.
이래서야 끝이 나지 않을 거 같아, 그 자리에서 한 벌만 상의를 벗기로 했는데 무언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설영 지점도 가까웠고, 거기서 안정을 취하면 좋아지겠지 싶었거든.
어서 오오쿠라를 쉬게 하려고 우리는 급히 걸었어.
 

"우와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요시다가 큰 소리를 내며 우리가 서 있던 대열에서 빠져나갔어.
자기 팔을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듯한 낯짝으로 괴롭게 쳐다보더라고.
 
"벌레가…! 검은 벌레가 팔에서… 윽!"
 
요시다는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픽켈로 자기 팔을 찌르려는 거야.
 
우리는 그걸 차마 말리지 못했어.
요시다가 픽켈을 휘두르니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해.
그러니까 우리가 머뭇거리는 새에 요시다는 자신의 팔을 세 번은 찔러버렸어….
요시다의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서 눈에는 붉은 자국이 드문드문 남았지.
 
피가 금방 얼은 덕에 지혈은 금방 됐지만, 그래도 요시다는 제정신을 되찾지 못했어.
힘이 빠진 왼팔을 싫다는 듯이 긁으면서, 벌레가! 벌레가! 이러고 계속 외치는 거야.
그리고 요시다는 쏜살같이 산을 무작정 뛰어내려 갔고, 아차 하는 틈에 모습을 감춰버렸어.
 
쫓으려 하는 나나 칸다를 고토가 슬쩍 말렸어.
오늘은 여기서 묵고 요시다를 기다리자는 거야.
날씨도 안정될 것 같으니까 요시다도 냉정해지면 자신의 발로 돌아올 터이다. 혹시 그렇지 않다면…….
 
확실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거겠지.
그 이야기를 무시하고 요시다를 쫓아갈 만큼의 용기가, 지쳐버린 몸에서 솟아나는 일은 없었어.
 
군대에서 일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슬아슬한 생사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리면, 아무리 싫은 운명이라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
 
체력이 그래도 좋은 편인 나라도 그랬는데, 나와는 또 다른 면으로 칸다는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칸다는 고토한테 물고 늘어지며, 어떻게 상태라도 보러 가면 안 되겠냐고 협상을 했어.
고토는 지낼 곳을 다 만들고 난다면 마실 물을 가지러 가며 잠깐만 상태를 보러 가도 좋다고 말했어.
 
칸다가 그렇게 요시다에게 신경 쓰는 건 나한텐 엄청 의외였는데, 거기엔 제대로 이유가 있었지.
 

"신도. 나는 요시다를 찾던, 못 찾던 이 산을 내려갈 거야."
 
눈을 모으던 중 칸다가 그렇게 말했어.
놀랐지. 그야, 어제 이야기할 때 얌전히 있는 편이 좋을 거라고 말하던 게 칸다였거든.
 
"오오쿠라랑 요시다 상태를 봤지? 고토는 그 약으로 우린 산소 부족에 빠질 일이 없을 거라고 했어. 그렇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고산병인 게 틀림없잖아. 게다가 이렇게까지 이 산을 오르는 이유가 뭐야? 우리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라니, 저 귀축안경이 그런 의도로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 생각해?"
 
칸다가 무슨 말을 하는진 잘 알 수 있었어.
고토에게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지. 그렇지만 고토에게 잘 붙어 다니면 살아서 돌아갈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내가 회피하고 있던 진실을 칸다는 똑바로 마주한 거야.
 
"아무튼 난 결심했어. 이대로는 어찌 되든 나쁜 일이 일어날 거 같고, 여기가 남극이라는 이야기도 왠지 믿음이 안 가… 신도, 무리하게 부탁하진 않겠지만,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나는 미쳐버린 오오쿠라와 칸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어.
고토는 그걸 해결해주긴 커녕, 그냥 놔둘 뿐이었지. 내가 똑같은 꼴이 된다면 고토는 틀림없이 날 내버려 둘 거야.
나도 마음을 다잡고 칸다를 따라가겠다고 결심했어.
 
그리고 우리는 슬쩍 빠져나갈 준비를 시작했어.
짐은 설영 지점에 두고 왔지만 무선기나 밧줄, 간이 난로 같은 비상용 장비는 항상 소지하고 다녔고, 며칠 분의 식재는 칸다가 고토의 눈을 피해서 몰래 숨겨왔었지.
이제부터 마실 물은 마침 용기도 가져 나왔고, 걸을 때 발견했던 얼어붙은 강을 이용하기로 했어.
눈을 녹이기 위한 가스라고는 해도 한계가 있어. 강의 물을 긷는 편이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토는 산의 물에는 미생물이 많으니까 마시지 말라 했었거든.
그치만 꽤 깨끗한 물이었다니까. 눈 녹인 것처럼 묘하게 걸쭉하지도 않았어.
 
이렇게 우리는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다른 학원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산을 내려가기로 했어.
무전기의 통신음이 들킬까봐 싫었으니까, 떠날 때까지는 전원을 꺼두고 잠시 후에 요시다에게 연락을 넣었지.
 
통신은 아무래도 연결은 된 것 같았어.
그러니까 우리는 필사적으로 불러봤지만, 지직- 하는 소리만 들렸고 요시다의 대답은 없었지.
 
포기하려고 할 때쯤 가까이서 무전기 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
우리는 요시다를 열심히 찾으러 다녔어. 그랬더니 근처에 검붉은 자국이 남아있던 거야. 
요시다의 팔의 상처를 생각한 우린, 그 자국을 쫓아가 보기로 했어.
 
핏자국은 드문드문 이어지더니 갑자기 뚝 끊겨 있었어.
…어, 그래. 절벽이야. 그곳의 눈엔 밟힌 자국이 있었으니 요시다가 거기서 발을 헛디뎠다는 건 확실했어.
벼랑 밑에도 눈이 쌓여 있고, 슬쩍 봐서는 길이 끊겨 있다는 걸 알아채기가 힘들어.
 
우리는 요시다의 모습이 보이길 기대하며 벼랑 밑을 들여다봤어.
그러자 멀리서 봐도 알 만큼, 검고 큰 무언가가 눈 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뭔가 생물인 걸까? 우리가 시선을 쫓으려던 그때였어.
 
무언가를 탐하는 듯한 점액질 같은 소리가 울리는 거야.
…요시다와 연결되어있을 테인 무전기에서였어.
 
"저기, 요시다……?"
 
칸다가 불러봐도 그 소리가 사그라드는 기색은 없어.
그렇지만 그 소리는, 확실히 생물이 내고 있는 소리였어… 그래, 살아 있는 것…….
우리는 상황을 이해하려 벼랑 아래를 다시 뚫어져라 쳐다봤어.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검은 무언가는 꿈틀거리며 사람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사람 형태의 팔 부분에서 사람 손이 불쑥 튀어나오는 거야.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마치 도움을 요청하듯이 솟아 나와 혈색이 전혀 없는 창백한 손…
그 움직임에 반응하듯이, 검은 생물은 그 손을 따라 올라오기 시작해.
손이 칠흑에 덮이자, 이윽고 틈새로 선명한 분홍색이 잠깐씩 보이는 듯했어.
 
그래. 그건 인간의 몸을 기어 다니며 먹고 있던 거야.
애초에 우리가 눈치챘어야 했어. 요시다의 팔의 상처는 추위에 금방 지혈됐었잖아.
핏자국이 남아있단 건 또 상처를 입었단 말이었어….
 
"으아아아아아……"
 
듣다가 못 참겠던 건지, 칸다는 내팽개치듯이 무전기를 벼랑 아래로 던져버렸어.
그런데……
 
"…소리가… 소리가 내 몸에서…… 으아아악!!"
 
칸다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가 입고 있던 스키복을 거칠게 벗어던졌어.
비닐제여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칸다의 옷 안쪽은 피로 끈적끈적 더러워져 있었지.
 
칸다는 피의 반점이 가득한 등을 드러내고선 눈 위에 고통스러워했어.
더워… 뜨거워… 전의 오오쿠라처럼 진땀을 흘리며 중얼거렸어.
 

(전체 CG는 여기에. 상당히 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 고어, 벌레 주의.)
 
그리고 등의 살이 끓는 물처럼 불어나더니, 노란 고름을 내뿜으며 안에선 대량의 검은 벌레가 튀어나왔어.
그땐 너무 늦어서, 이미 칸다의 등에선 대부분의 살이 떨어져 나가 등뼈를 드러내기까지 했어.
 
이리저리 날뛰던 칸다가 솟아난 벌레들에게 집어삼켜질 때, 나는 주저앉은 채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 
내가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땐 검은 벌레는 칸다를 감싼 채 움직이지 않았어.
피가 얼어붙어 벌레까지 얼려버린 것 같았지…….
벌레는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그대로 죽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확인해 볼 여유 같은 건 없었어.
 
이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풀이하며, 나는 움직이지 않는 칸다를 놔두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
 

"아, 있었어! 선생님! 8번 발견이에요!"
"뭐야, 신도. 칸다는 어쨌어?"
 
난 정신없이 달리다가 눈을 모으고 있던 오오쿠라와 애들하고 합류했어.
오오쿠라에게서 아까까지의 이상함은 보이지 않았지.
 
"야, 너… 등은 어떻게 됐어?"
"뭐? …아, 아까 그거구나. 놀라게 해서 미안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좀 근질근질하긴 한데. 아~ 빨리 집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싶다."
 
난 칸다의 일을 말해주려 그 녀석한테 가까이 갔어… 그리고 봐버린 거야.
오오쿠라의 등이 우툴두툴 부글거리며 움직이고 있어.
 
아니, 오오쿠라만이 아니야.
다른 학원생들도 모두, 배낭을 메고 있어서 알아채긴 어려웠지만 몸의 어딘가가 기묘하게 꿈틀거리면서, 벗겨진 피부 틈새를 벌레가 헤엄치듯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그런데도 단 한 명도 눈치채는 일 없이 천연덕스런 얼굴을 하고 있어.
 
"아, 눈치채 버렸나요?"
 
어느샌가 등 뒤에 서있던 고토가 내 귓전에 몰래 중얼거렸어.
 
"강의 물을 마셨었죠. 그럼 안 되는데 말이지요. 모처럼 환각을 유발시켜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끝내려 했더니…"
"뭐, 환각?"
"이곳의 눈에서는 말이지요, 어떤 벌레의… 사지타리우스의 알이 대량으로 낳아지고 있답니다. 그러나 사지타리우스의 유충은 추위에 매우 약해, 이런 설산에서는 부화하자마자 죽어버린답니다. 그래서, 생물의 온기라는 것이지요. 성충으로 자라려면 다른 생물에 기생할 필요가 있답니다. 사지타리우스는 인체에 스며들어가 부화하고, 신체 내의 고기를 양분으로 성장해가지요. 다른 생물이나 온실에서의 생육 실험도 해봤지만 안 되더군요. 군더더기가 없는 근육이 아니면 성충으로는 자라지 못했답니다."
"그러면 우리는……"
"벌레의 먹이지요, 먹이. 젊고 근육량이 많아서 딱 좋답니다. 정상에 닿을 무렵에는 사지타리우스 성체를 수천 마리는 조달할 수 있는 계획이었지만요….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증상이 너무 빨라서 말입니다. 이래서야 정상의 '배(船)'에 싣기도 전에 모두 먹혀버릴지도 모르겠지요. 아하하하……"
 
고토의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내 몸에도 죽은 칸다나 눈 앞에 있는 녀석들과 같은 벌레가 기생하고 있단 거야.
그렇게 자각하니, 심장 소리에 이전의 벌레 소리가 섞여 쿵쿵거리며 몸속에 울리고 있는 듯한 심정까지 됐어.
등뼈를 꿈틀거리며 기어오르는 검은 벌레… 지금 와서도 그 녀석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건 아닐까 하고, 떨리기도 해.
 
"당신은 8이라는 대단한 행운의 숫자를 받은 사람이니까, 모처럼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지요. 여기에 있는 학생들의 살을 먹으세요. 당신의 신체를 먹어치우기 전에 어서 양분을 섭취해서 사지타리우스를 키우면 괜찮답니다. 그들은 사지타리우스의 환각 작용으로 아픔은 느끼지 못하지요. 인간이란 아픔만 느끼지 못하면 팔을 떼 버려도, 발이 없어져도 평화롭게 살 수 있답니다. 정상까지 그걸 조금씩 먹으세요. 광기를 초월하는 한 걸음을… 용기를 내어서 나아가는 거지요! 뭐어, 8번이라면 분명 가능하답니다… 친구를 버려두고 온 당신이라면 말이지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며 고토는 나에게 과도를 쥐어줬어.
그걸로 동료의 고기를 조금씩 베어 먹으라는 거야.
 
너라면 어쩌겠어?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남고 싶어?
 
1. 살아남고 싶다.
2.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의외로 지저분한 놈이구나, 너. 배짱도 크다고 해야 되나…
나는 주저했어.
 
사이가 좋아진 동료를 자길 위해서 먹으라니… 그런 짓을 할 거라면 뒈져버리는 게 나아.
그래, 스스로를 타일렀어.
 
그렇지만 동료들은 사지타리우스에게 먹혀 이미 벌레의 둥지나 다름없어.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분명 이 녀석들은 정상에 가기 전에 죽어버릴 거야….
죽어가는 동료와 나의 목숨… 그걸 저울질한 끝에 결국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져 버린 거야.
 

그리고 인도에서 벗어난 모독적인 행동을 취했어.
 
우선 밤 중에 자고 있던 오오쿠라의 등 쪽 살을 얇게 베어내서 조금씩 먹었어.
고토가 말하던 환각이란 건 꽤나 강한 건가 봐, 오오쿠라 녀석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지.
베인 곳은 금방 얼어붙으니 피 한 방울도 흐르는 일은 없었고, 얼어붙은 고기는 먹어봤자 맛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나마 편했어.
 

그리고 며칠 후, 살이 발라진 물고기처럼 등뼈가 훤히 드러난 오오쿠라는, 내장을 벌레에게 먹혀 움직이지 않게 됐어.
 
다음은 이름도 모르던 3번의 살을 먹었어.
걷는 데에 쓰이는 다리를 먹으면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 등, 뺨, 어깨, 배, 팔… 인체에서 쓰이지 않을 듯한 부분부터  조금씩 갉아먹었어.
 
그렇게 또 한 사람, 한 사람 나는 인간을 먹어서 죽여간 거야.
 

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대열에는 고토와 나밖에 남지 않았어.
정상에 다다랐는 데도 풍경을 즐길 여유는 나에게 없었지.
 
정상에 준비되어 있던 기묘한 형태의 비형선으로, 나는 벌레 적출 수술을 하러 갔어.
아주 훌륭한 벌레가 키워졌다며 고토 놈은 꽤 흥분했었지.
원래 수백 마리는 자랐어야 할 벌레가 드물게 서로 잡아먹었다는 것 같아.
기른 주인과 닮아서 그런 거라던데, 어이가 없어서 딱히 할 말도 안 나오더라.
 
수술 후엔 고토에게 한 장의 종이를 받았어. 수학 시험지의 답안이었지.
아마 선생을 매수라도 한 거려나… 아무튼 뚜껑을 열어보니 100점의 진상은 그딴 거였던 거야.
우리는 종이 한 장 때문에 목숨을 걸고 등산한 거지.
 

그 산에서 내가 한 짓거리는 그야말로 광인 그 자체야.
아니지. 지금도 미쳐 있는 걸지도 몰라. 그렇지 않다면 다시 그 산을 오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 아냐.
아, 산을 오르고 싶다는 거랑은 살짝 달라. 인간의 맛에 버릇을 들여버렸단 것도 아니야. 
 
내가 잊지 못하는 건 그 벌레 쪽이거든.
몸속을 벌레가 헤엄치는 듯한 그 감각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그 벌레가 기어 다니며 내던 황폐한 소리가 귀에서 떨어지질 않는 거야.
…귀에서, 입에서, 구멍이란 구멍에서.
 
그 검은 벌레가 기어 나와주기를, 마음 깊은 곳에선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ED94. 사지타리우스의 광기(サジタリウスの狂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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